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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이슈모음

마추픽추 폐쇄, 잉카 유적지 찾은 관광객 수백 명 발 묶여...

by ▦▒▥▧▩ 2023.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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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에 수백명의 관람객이 고립되어 있다.
마추픽추

페루 문화부는 21일(현지시간) 반정부 시위가 격화됨에 따라 잉카 유적지인 마추픽추를 전격 폐쇄한다고 밝혔다.

 

마추픽추 폐쇄 이유는?

앞서 페루에서는 작년 12월 페드로 카스티요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뒤 반란 및 음모 혐의로 구금됐다. 현재 페드로 카스티요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저지른 범죄 혐의로 인해 25년형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상태다.

 

이후 카스티요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그의 석방을 요구하며 전국 단위의 시위를 한 달 넘게 벌이고 있다. 정부가 지난 14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음에도, 19일에는 전국 각지로 흩어졌던 시위대 수 천 명이 수도 리마에 모여 방화와 시설물 점거를 일삼는 등 더욱 격화된 양상을 보였다.

 

지난 몇 주 동안 계속된 시위로 페루 전역에서 최소 수십 명이 사망했으며 다수 지역의 공항이 시위대의 주요 공격 타깃이 되면서 마추픽추의 산 정상인 잉카 성채로 가는 관문 중 하나인 남부 도시 쿠스코 국제공항도 접근이 금지된 상태다.

공항 폐쇄에 앞서 반정부 시위대는 지난 18일 공항 진입을 시도하며 버스 정류장을 불태우고 상점 내부를 약탈하는 등 충돌이 빚어졌다. 이로 인해 쿠스코 공항 인근에서 1명의 무고한 시민이 사망했고 현장에 파견됐던 경찰관 중 19명이 부상을 입는 등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이번에 마추픽추 유적지가 돌연 폐쇄되면서 관광 중이었던 국내외 관광객들이 현장에 그대로 발이 묶인 상태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마추픽추에 발이 묶인 관광객들은 최소 수백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마추픽추, 페루의 옛 잉카 제국 도시 유적

험준한 고지대에 위치한 신비한 도시였으나 지금은 폐허가 되어 있다 '마추픽추'라는 말은 '늙은 봉우리'라는 뜻으로 해발 약 2437m에 위치한 고산도시다. 산 아래에서는 어디에 있는지도 볼 수 없다고 해서 잃어버린 도시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파차쿠티와 투팍 잉카 유판키 황제의 재위기인 1400년대 후반에 지어졌으며, 약 80여 년 동안 사람들이 거주하다가 1530년대 즈음에 완전히 버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고학자들은 파차쿠티 황제가 군사원정 도중에 마추픽추를 황실 휴식처 겸 긴급 대피소 등의 목적으로 지었을 것이라 여기고 있다. 도시의 기능을 하고 있을 때에는 대략 75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나, 스페인의 콩키스타도르들이 들어온 1530년대 즈음에 천연두가 확산하고 잉카 제국이 쇠퇴하면서 마추픽추도 함께 쇠락하여 완전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힌 것이다. 워낙 험한 산지에 있어 찾아가는 사람도 없었고 위치조차 제대로 몰랐기 때문에 잉카 제국 멸망 이후 계속 잊힌 상태로 있었지만, 1911년이 되어서야 미국의 학자 하이럼 빙엄(Hiram Bingham)이 원주민 소년의 증언을 토대로 실체를 확인함으로써 알려졌다. 옛날에는 산을 깎아 만든 계단을 통해 오르내렸지만 관광지로 개발된 이후로는 셔틀버스가 생겨서 쉽게 다녀올 수 있다.

 

잉카인의 기술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곳이다.

① 산 위부터 산 아래층까지 물이 고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내려가는 정교한 수로를 만들었다.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물웅덩이 하나 생기지 않고 전부 식수로 사용했다고 한다. 게다가 현재까지도 그 수로는 특별한 손질 없이 여전히 물이 흐르고 있다.

② 태양의 신전의 경우 거대한 자연석을 거의 손대지 않고 지은 건물이다.

③ 철제도구가 전혀 없었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면도칼 하나 들어가지도 않는 정교한 석조건축, 조각술이 이용되었다.

④ 산바람을 이용한 자연 냉장고를 개발해서 널리 쓰고 있었다. 고산 지대 특유의 환경을 이용한 것이긴 하지만, 주어진 자연환경을 이해하고 응용한 것이다. 서양문명보다 앞서서 음식물을 저장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는 서구보다 500년 앞선 기술로 감자를 6년간 썩히지 않고 보관할 수 있었다고 한다.

⑤ 자연석으로 만든 오차가 없는 나침반과 해시계가 있다.

물론 계급사회답게 물과 물자는 상층의 왕/귀족/사제들의 영역을 먼저 거쳐오며, 이후 하층으로 오면서 서민, 노예 등 계급 순으로 제공된다. 제한된 자원이 계급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분배되는지 잘 보여주는 형태로, 이러한 도시모델은 세기말 막장 도시의 표현에 아주 잘 애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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